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직봉전쟁 (문단 편집) === 반직 삼각동맹의 결성 === 직계군벌이 쇠약해지는 가운데 [[봉천군벌]]의 [[장쭤린]], [[안휘군벌]]의 [[돤치루이]], [[중국 국민당]]의 [[쑨원]]은 직계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동맹을 체결하였다. 그 시작은 [[안직전쟁]]이 발생하기도 전인 1919년으로, 쑨원은 동맹회 회원이었던 동북 출신의 영무를 상하이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국제적으로 러시아와 연합하여 [[레닌]]의 혁명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5.4운동]]을 활발히 진행시키려면 중국의 신청년이 일어나야 한다. 중국 혁명의 새로운 피로 새로운 힘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들은 시기를 잘 파악해 정권을 잡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잘라내야 한다. 먼저 북양 직계군벌을 타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즉시 광동으로 돌아가 정부를 새로 조직하고 친히 대군을 인솔하여 북벌을 단행할 계획이다. 또 하나는 우리는 북방군벌을 분화해야 하며 직계와 환계의 이해 충돌을 이용해야 하며 [[돤치루이]]와 연락을 취하고 특별히 관외 실력파 [[장쭤린]]과도 연락해 셋이 합작하여 [[차오쿤]]과 [[우페이푸]]를 몰아내야 한다." 1920년 여름, 장쭤린이 호로도 항만 건설을 위해 투자회를 열자 영무는 화교 자본가들의 서신을 받아 [[장징후이]]의 주선으로 장쭤린과 만날 수 있었다. 영무는 돤치루이는 이미 쑨원과 손잡기로 결정했으니 공동으로 직계와 대항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장쭤린은 부관 장아동을 보내 쑨원을 만나게 했고 지속적으로 쑨원과 접촉했다. 하지만 이 소식이 차오쿤에게 새어나가자 차오쿤이 직접 장쭤린을 찾아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장쭤린은 책임을 봉군 총사령부 비서장 송문림에게 모두 뒤집어씌운 다음에 봉천으로 돌아가 쑨원과의 접촉을 이어나갔다. 1922년 [[1차 직봉전쟁]]이 터졌을 때는 쑨원은 [[영풍함 사건]]을 맞이하여 도리어 기반을 잃었고 장쭤린을 도울 수 없었지만 장쭤린은 영풍함 사건 이후 영무를 찾아 계속 국민당과 합작할 의사가 있음을 타진하며 쑨원에게 동북으로 이주할 것을 권하기도 했지만 쑨원은 거주하였고 이에 장쭤린은 10만원의 자금을 생활비 명목으로 지원하였다. 이후 쑨원 측은 [[왕징웨이]], [[청첸]], [[쑨커]] 등을 파견하여 연락을 취했고 장쭤린은 [[장덩쉬안]], [[한린춘]], [[양내실]] 등을 파견하였다. 1923년 11월 25일에는 쑨원이 장쭤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장쭤린|우정 총사령관]] 귀하. 작년부터 [[천중밍]]이 [[우페이푸]]의 사주를 받고 [[영풍함 사건|후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나의 북벌 계획은 중도에서 좌절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봉군 역시 적을 소탕하지 못해 국적을 참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실패 이후 저는 단지 몸만 상하이로 빠져 나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적수공권으로 우페이푸와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여러 번에 걸쳐 자금 지원을 해 주어 남은 여력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또 복건성으로 철군을 할 수 있었으며 정의를 위해 일어선 운남성군[* [[양시민]], 유진환의 객군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국민정부에 불복종하여 [[1925년 객군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적이 서남에서 세력을 떨치지만 사천성 민중이 우페이푸를 쫓고 있으며, 계속 진압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광저우는 본거지가 되므로 공의 큰 힘에 의해 광저우 회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저우를 회복하고 잔당을 없애려고 하는 마당에 사기가 일시적으로 침체되어 있고 재정이 곤란하여 날마다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속히 잔당소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도들은 아직도 동강의 험한 곳에 의지하고 있어 지금 골칫덩어리들입니다. 우페이푸와 치셰위안이 많은 물자를 동원하여 건너와 공격하여 10일 내에 석룡을 지키지 못하면 광저우가 또한 위기가 될 뻔 하였지만 이달 18일, 19일 양일간 우리는 배수의 진을 치고 병사들이 잘 싸워주어 적의 주력부대를 완전히 격파하였습니다. 광저우는 위기에서 벗어났고 안정을 취하게 되어 이때부터 광동 내부는 평정을 기약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벌 계획도 역시 시행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고로 엽예호를 파견하오니 잘 지도 바랍니다. 아울러 상세한 군정을 알려드릴 것이니 의견 교환의 기회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환계의 루융샹도 아들 노소가를 봉천에 보내 장쭤린에게 기계와 장비 지원을 청하는 한편 비행기를 빌려줄 것을 청했다. 장쭤린은 이를 승낙하는 한편 쑨커, 장쉐량, 노소가의 만남을 주선하여 소위 삼공자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로 인하여 안휘, 봉천, 국민당 3파벌이 직계에 공동으로 대항하자는 반직삼각동맹이 완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